한국의 사찰33- 남양주 봉선사
한국의 사찰33- 남양주 봉선사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길 32 봉선사
※포스팅하기전 먼저 2024년 6월 중순경 부터 주차료가 신설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이 포스팅은 '봉선사=연꽃' 이 아닌 봉선사 사찰 중심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개요】
●봉선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다. 교종 수사찰의 종풍과 선종사찰의 법맥을 그대로 전승하고 있는 대가람이다.
●969년(고려 광종 20년)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하여 운악사라 하였다. 그 후 서기 1469년, 조선 예종 1년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조의 능침을 이산에 모시고는 광릉이라하고, 이어 당사를 초창하여 선왕의 능침의 명 복을 비는 자복사로 삼고 봉선사라 칭했다고 한다.
●1551년(명종 6년)에는, 문정왕후에 의해 교종의 중심된 절로 지정되어 여기서 승과를 치르기도 하고, 전국 승려와 신도에 대하여 교학을 진흥하는 중추적 기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봉선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등 전쟁때마다 소실되었다. 특히 6.26전쟁에는 전면 소실되어 현재 당우는 사찰의 역사에 비해 오래지 않아 고찰로서의 외형적 모양은 찾아보기 어렵다.
●낭혜대사(1539년)의 뒤를 이어 계민선사(1637년)가 중건하고, 1749년과 1848년에 다시 중수해 고아하고 장중한 대찰의 면모를 되찾았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어 오늘의 봉선사는1960년 무렵부터 재건불사를 일으킨 가람의 모습이다.
●주요 복원을보면 1959년 화엄스님 범종각. 63년 능허. 운경스님 운하당. 1967년 오보명일시주 주지실 신축, 1969년 운경스님 요사채및 동별당. 1970년 대웅전(큰법당)을 운허스님과 화주 운경스님의 인권과 정문 수행의 시주로 복원
●1972년 만허 스님때 정문수행의 시주로 정중탑. 방적당 복원, 1977년 월운스님때 정보현행 시주로 개건당. 다경실 신축했으며 이후에는 유치원. 화장실등 시설물을 비롯해 각종 추모비. 식당등 다양한 건물들을 개축내지 신축하며 도량의 크기를 넓혀왔다.
●봉선사를 거쳐 간 주요 스님들을 보면 월초 거연(1858 ~ 1934)운허 용하(1892 ~ 1980)운경 기홍(1904 ~ 2000)월운 해룡(1929 ~ 2023)밀운 부림(1934 ~ 현재) 두산 일면(1947 ~ 현재)스님 등이 있다.
●봉선사는 교구 본사찰 답게 규모가 큰 편이며, 입구에 커다란 연못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 사찰이다. 상당수 내방객은 사찰보다는 여름철 화려하게 피어나는 연꽃을 보거나, 휴식을 취하기위해 방문한다. 이 연못이 사찰 소유이기 때문에 사찰도 같이 돌아보는 경우가 많다.
●경내에 납골당도 있고 약사여래불상에 신도들이 직접 금박을 한 개금불사도 있어 볼거리다. 1만원을 시주하면 순금종이 2장을 받아 얼굴 부분만 빼고 자유롭게 금박을 입혔다고한다.
●사찰 대웅전 현액이 한글로 쓰여있는 사찰은 처음이다.
이유는 재건한 운허 스님이 경전의 뜻만 알면 되는데 경전을 보기 위해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굳이 한문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행했다고 하며, 국내 최초로 한글 현판이 탄생했다고 전한다.
●큰 법당의 주련 또한 한글로 사용했으며, 대웅전 내부 좌우 벽면에도 화엄경과 법화경을 한글로 자잘한 글씨로 번역하여 동판에 새겨 놓았다.
●큰 법당은 재건 당시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상식적으로 목재를 사용해야 하나 한글 현판을 사용한 운허의 뜻과, 콘크리트를 사용한 것이 오히려 당시 기술을 대표하는 사례로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522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봉선사에는 동종이 3개 있는 것 같다. 대웅전에 작은 것 하나, 범종각에 1.2층 각각 하나씩이다. 6.25때 전소당시 화재 현장에 남아있는 동종은 조선전기 것으로 현재 보물 제 397호로 지정되어 있다.
【특징】
●광릉수목원 입구 바로 옆으로 출입구가 있다. 정문 입구가 복잡하다. 버스 종점이기도 하고 바로 앞에 음식점도 많아 불법 주차 차량도 은근히 많다.
●이 사찰의 주지였던 운허 스님의 8촌인 춘원 이광수가 친일 이력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운허스님이 사찰 인근 사릉 쪽과 사찰에서 4년여 간 기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로 인해 이 사찰의 부도와 비를 모아 놓은 곳에는 춘원 이광수의 비석도 있다.
●사찰에서 세운 것은 아니며, 이광수의 전 처 였던 허영숙이 세웠다. 그녀는 홀로 자녀들을 키우고 말년인 1971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하였는데, 납북된 이광수의 생사를 알기 어렵게 되자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던 중 75년 귀국했다가 그해 9월에 갑자기 사망했다.
●이 사찰은 또 조용필이 첫 결혼한 곳, 가수 유현상이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와 결혼한 사찰로도 알려졌다.
●봉선사는 그동안 주차장이 무료였으나, 최근(6월 3째주 즘)에 유료로 전환되었다고한다. 기본10분 1200원부터 시작해 10분마다 200원씩 추가되고, 하루종일 주차할 경우 15,000원으로 서울 강남 중심의 봉은사가 종일 2만원임을 고려하면 비싼편이다.

주차비 신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입구 쪽 식당손님들의 주차, 또는 연못공원을 이용하는 시민의 장시간 주차, 사찰의 수익 사업 등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유야 뭐든 종교시설인 사찰에서 그동안 문화재 관람료 명목으로 받아오던 입장료가 모두 무료로 전환되었음에도, 주차료를 받아 수익을 내는것은 중장기적으로 봐선 사찰이나 종교자체에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다.
●다만 사찰 안의 음료등 판매시설을 5천 원 이상 구입하면 1시간 무료주차를 해 준다. 문화재 관람료 폐지이후 도시의 도심사찰을 제외하고는 주차비를 받는 사찰은 처음 접했으며, 차량으로 방문하는 경우 시간에 쫒기다 보면 사찰을 돌아보기에 마음이 급해질 듯 하다.

▲봉선사 안내도.

▲주차장 진입로

▲봉선사 안내판

▲봉선사입구를 문지기처럼 500여년간 지켜온 느티나무

▲주차장 입구에 세워진 봉선사 표지석


▲첫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연못을 거쳐 사찰로 진입할 수도 있고 차단기 진입후 곧장 올라가서 사찰 바로옆에 주차장에 대도 된다. 일주문과 표지석. '교종본찰봉선사'라고 현액에 적혀있다.

▲일주문 천정의 용 문양

▲3.1 만세운동 시위지 안내판.태허. 지월. 완수 스님이 주도하였다고 한다.


▲디딜방아와 디딜방아 안내문. 원래 다른 곳에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사찰로 진입하는 산책로. 좌측으로는 연못이 있다.
▲일주문 우측으로 부도와 비석등을 한곳에 모아 놨다.

▲월운스님 부도탑

▲운경대선사 부탑

▲운허당 대종사 승탑

▲봉선사 조실운경당기홍큰스님 추모비

▲자월당 순재화상 건국유공행적비

▲만허당대선사추모비

▲운허당대종사추모비

▲봉선사기실비

▲월초대화상 추모비

▲봉선사중창비

▲중창대시주 정문수행. 이월파(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정보현행 공덕비

▲춘원 이광수의 기념비

▲주차장서 5분여간 걸으면 사찰이 나온다.

▲사찰입구에 버티고있는 500여년된 느티나무안내문


▲하마비: 말 그대로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라는 표식이다.

▲봉선사 범종루


▲범종루에 있는 동종 안내문▼범종루 동종(보물397호)



▲범종루 2층에는 법고와 또 하나의 다른 종. 그리고 목어등이 있다.

▲범종루 뒤쪽으로는 한글로 된 현액이 있다.

▲범종루의 목어

▲봉향당



▲경내로 진입하는 청풍루. 안쪽에서는 설법전이라는 현액이 걸려있다.


▲당간지주와 안내문


▲청풍루 앞의 좌우 석등

▲대불왕전(다른 사찰의 약사전 불상과 같은 역할을한다)

▲다경실(조실스님 거처)

▲봉선사 경내 풍경

▲요사채 (동별당)

▲대웅전 앞 마당

▲대웅전(큰법당) 용마루


▲대웅전 불화

▲대웅전 삼존불상

▲대웅전 벽면을 가득 메운 한글 화엄경. 법화경

▲대웅전 안의 작은 종

▲대웅전(큰법당) 현액


▲큰법당 주련도 한글로 되어있다.

▲큰법당 뒤편

▲큰법당 건축물 안내문

▲큰법당 오르는 계단을 지키는 해태상?

▲방적당(요사채)현액

▲지장전

▲지장전 현액

▲소각장

▲개건당.개산대공덕주 정희왕후 윤씨와, 중건공덕주인 계민선사와 정문수행을 모시기 위한 것이었으나 현재는 납골당으로 쓰이고있다.
▲개건당 현액

▲개건당 옆 숲속에 당간지주 같은게 보인다.


▲조사전과 조사전 현액(아래). 조사전은 열반에 든 스님들 영정을 모시는 곳이다.문이 잠겨있다.




▲토속신앙을 한 곳 모셨다.(삼성각)독성각. 북두각.산령각 3개의 현액이 한 당우에 걸려있다.
▼내부에는 각각의 산신.치성광여래상(칠성탱).독성 이 있다.




▲지붕만 있는 창고?와 ▼샘물터


▲큰법당 풍경

▲봉선사 정중탑

▲관음전 불상

▲관음전 현액

▲괘불도 안내문. 대웅전 앞에 걸개만 있으며 괘불도는 따로 보관중이라 실물을 볼 수 없다.

▲지장전(원래는 세조와 정희왕후위패를 모시는 ▼어실각 이었음. 지장전 측면에는 여전히 어실각 현액이 걸려있음)



▲운하당 앞.뒤쪽과
▼운하당 현액..운하당은 대중방으로 사용하는 당우다.


▲방적당

■운판..운하당과 범종루 2층에 각각있다.
▲회랑

▲회랑 바깥쪽

▲판사 관무헌

▲판사관무헌 현액. 어실각을관리하는 봉향판사 관직을 받은 주지가 머물던 곳


▲선열당. 2층은 선열당. 1층은 채운관(사찰음식체험관)이다.▼선열당 현액. 선열당은 수좌스님들의 해제철 해랑방사등으로 쓰인다.


▲회랑에는 여러개의 방이 달려있다.

▲회랑 사이사이에 있는 출입문

▲회랑 바깥쪽 석조 관세음 보살상.

▲염불원..선원으로 사용하는것 같다.

▲육화당

▲염불원 뒤쪽 정원

▲단풍나무 연리지

▲봉선사 카페 '다경향실'테라스와 ▼다경향실 현액


▲이곳은 템플스테이를 하는 곳이며 외부인 출입금지다.

▲연못쪽의 미륵불

▲연못쪽 석조 석등

▲연꽃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한다. 7-8월에는 축제를 한다.

▲연못 전경

▲사찰 맨 위쪽에도 대형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다.

▲지붕만 있는 창고의 벌집

▲사찰입구 도로의 나무아미타불 석조물

▲연못의 미륵불




▲호수 공원 곳곳에 놓여있는 석조 불교관련 조각품들


▲지중국사 현묘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