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시설/사찰

한국의사찰35-남양주 흥국사

dogyein 2024. 7. 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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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찰35-남양주 흥국사

【개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수락산 동쪽 자락에 위치한 흥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25교구본사 봉선사 말사이다. 대한민국에는 이외에도 고양과 전남에 있는 흥국사가 알려졌으나, 창건 시기는 남양주 흥국사가 제일 빠르다.

 

●흥국사는 599년(신라 진평왕 21) 원광법사(圓光法師)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창건하여 처음에는 절 이름을 ‘수락사(水落寺)’라고 하였다. 원광법사는 화랑도의 세속오계를 만든 스님이다.그 후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초기까지 여러 차례 절을 중창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기록을 확인하기 힘들다. 조선 중기부터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 시대 선조가 친아버지였던 덕흥부원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재건한 능침 사찰이다. 덕절[德寺], 수락사(水落寺), 흥덕사(興德寺)라고도 한다.

 

●명종의 양자로 왕위를 이은 선조는 즉위 후 친아버지 덕흥군을 ‘덕흥대원군’으로 추존하였다. 이 무렵부터 덕흥대원군의 묘를 돌보는 흥국사는 자연스럽게 ‘덕절[德寺]’로 불리게 되었다는 내용이 봉선사본말사지(奉先寺本末寺誌)등에서 확인된다. 사찰을 가다보면 덕흥대원군 묘 이정표가 보인다.

 

●흥국사는 예로부터 화사(畵師)들이 많이 머물렀던 사찰로 ‘화사양성소’ 또는 ‘경성화소’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근세 화사들의 본거지였던 금강산 유점사, 마곡사, 통도사 등과 함께 조선 후기 뛰어난 금어(金魚)를 배출하여 화사 양성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흥국사에서 화사로서 수행을 쌓은 많은 승려들은 전국 각지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발휘하며 불화 제작에 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흥국사는 조선 불화의 명맥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였다.

 

●흥국사는 높은 축대 위에 당당히 서 있는 대방채를 비롯하여 영산전과 대웅보전, 시왕전, 시왕전 뒤편의 만월보전, 독성전이 가람을 이루고 있으며, 많은 재와 행사가 열린다. 2019년 4월에는 선대 조사와 지역 신도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영산재(靈山齋)를 봉행하였다. 영산재는 부처가 대중들에게 설법을 한 영취산의 모습을 상징화한 영산회상(靈山會相)을 오늘날에 재현하는 대표적인 법회다.

 

●특히 영산재는 다른 천도재보다 규모가 크고 장엄한 작법무(作法舞)가 행하여지기 때문에 1973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국제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흥국사는 역사가 오랜 만큼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남양주 흥국사 영산전(경기도유형문화재 289호), 남양주 흥국사 대방(국가등록문화재), 남양주 흥국사 대웅보전, 남양주 흥국사 소조석가여래좌상 및 16나한, 남양주 흥국사 성임당탑, 남양주 흥국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등의 주요 문화유산이 있다.

 

●대방 현판의 ‘흥국사’는 조선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대방은 한 곳에서 스님들이 웬만한 생활은 할 수 있게 만든 큰 방으로 규모가 대부분 크다. 19세기부터 한국 사찰에서 염불 수행이 성행하고 접대를 위한 공간이 필요해짐에 따라 생겨난 법당인데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근대기의 대방 건물은 몇몇 사찰에만 남아 있는데, 이곳 대방은 그중에서도 격식을 갖춘 건물로서 독특한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기존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난 형태의 복합적·기능적 건축물로 19세기 말 한국 불교의 시대적 특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대웅보전도 여러 의미를 지닌다. 정확한 연대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1793년(정조 17년)에 중수되었고, 1818년(순조 18년)에 화재로 멸실되었다가 1821년에 중건되었다. 1917년에도 중수기록이 있다. 대웅보전의 내부에는 목조석가삼존불좌상 및 감로왕도 지장탱화, 칠성탱화, 현왕탱화, 신중탱화, 괘불이 보관되어 있으며 여러 편액들도 보관되어 있다.

 

●대웅보전은 1985년 6월 28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6호로 지정되었으며, 대웅보전 안의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은 2011년 3월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되었다. 남양주 흥국사 소조석가여래좌상 및 16나한상 일괄은 2013년 2월 28일 보물 1789호로 지정되었다.

 

●흥국사 경내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 남양주 흥국사 성임당탑은 탑신석 상부에는 ‘성임당축존지탑’이라는 명문이 있어 주인공 당호가 성임당이며, 법명이 축존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성임당의 행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아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부도의 양식과 돌을 다듬는 수법으로 보아 18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1985년 6월 2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5년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영산전(경기도 유형문화재, 2014년 지정) · 시왕전 · 독성전 · 만월보전 · 반산암 · 단하각 · 응향각 · 만세루 · 승방 등이 있다.

 

●보물로는 조선 중기의 작품으로 보이는 경판(經板)이 보존되어 있다. 원래 안해장전(安海藏殿)에 보관되어 오던 것으로, 미타경족자판(彌陀經簇子板) 1부, 연종보감판(蓮宗寶鑑板) 1부, 미타경판(彌陀經板) 1부, 십육관경판(十六觀經板) 1부 등이 남아 있다. 이들은 모두 남호대사(南湖大師)가 직접 써서 판각한 것이다.

 

●또한 시왕전에 봉안되어 있는 지장보살 삼존상과 시왕, 그 권속 등 21구가 일괄로 2011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 어필병풍(御筆屛風) 1권 및 십장생화병풍(十長生畵屛風) 1좌가 있고, 2006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성임당(聖任堂)의 탑이 있다.

 

【연혁】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1568년(선조 1) 선조가 덕흥대원군의 원당(願堂)을 건립하면서 ‘흥덕사(興德寺)’라는 편액을 하사한 시기를 공식적인 사찰 건립 시기로 보고있다. 1626년(인조 4)에 흥국사(興國寺)로 바꾸었다.

 

●1793년(정조 17) 5월에는 정조가 승려 기허(騎虛)에게 내탕금을 하사하여 전각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지만, 1818년(순조 18) 9월에 대웅전·명부전 등 많은 건물들이 화재로 소실되었고 만월전(滿月殿)과 양로실(養老室)만이 피해를 면했다.

 

●4년 뒤인 1822년에 다시 승려 기허에게 내탕금을 내려 절을 중건하게 하였는데, 이때 대웅전·시왕전·대방 등이 중수되었으며, 연화경(蓮花經) 7축(軸)으로 경회(經會)를 열어 국가의 복을 기원하였다.

 

●1856년(철종 7) 4월에는 청신녀(淸信女. 요즘의 불교여신도) 양씨(梁氏)의 시주로 은봉대덕(隱峯大德)이 만월전을 새로 짓고 단청을 하였으며, 1878년(고종 15)에는 용암(庸庵) 장로가 시주금을 모아 대웅전과 대방 37칸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1888년에는 제암(濟庵) 대덕이 시주금을 모아 영산전을 건립하였고, 요사채를 중수하여 단청불사를 하였다. 이후 신도 강재희(姜在喜)의 시주로 각 법당의 기와를 교체하였고, 대웅전 3존상의 개금불사(改金佛事)를 하였다.

 

●1917년에는 주지 범화(梵華)가 각 전각과 요사채를 중수하고, 기와를 교체하고 단청을 하였다. 이후 1790년에는 봉은사·봉선사·용주사·백련사 등과 함께 나라에서 임명하는 관리가 왕실의 안녕을 비는 오규정소(五糾正所)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사찰의 입지가 더욱 높아지기도 하였다.

 

【특징】

●흥국사는 고찰로서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사찰중 하나다. 대체로 대중교통이 접근하지 않는 산 속 사찰이 고찰로서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해 고즈넉하고 사찰다운 분위기를 내뿜는다.

 

●요즘은 접근성이 좋거나, 대형 사찰들은 템플스테이다 카페다 해서 현대식 건물을 공간마다 엄청 지어서 고찰로서의 분위기가 점점 사라져가서 천년고찰이라고 해도 그 분위기를 찾기 어려울 때가 많아 안타깝다. 공간과 건축물의 미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찰 주차장은 일주문을 지나 200미터 가량 더 오르면 수십대 주차 가능한 주차장이 나온다. 일주문부터 걸어 올라가고 싶다면, 일주문 왼쪽에 10대 가량 댈 수 있는 주차 공간이 있으나 경사져서 주차가 불편하다.

 

●오른 쪽으로 석쇠불고기집 묵향원 주차장이 크게 두 곳 있다. 사찰 일주문 바로 앞에 음식점이 있다. 평일이라면 묵향원 주차장을 이용해도 큰 문제가 없을 듯하다. 묵향원을 찾는 손님들이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사찰을 많이 찾는 듯하다. 사찰을 찾는 사람도 묵향원을 이용도 하고...

 

●사찰로 오르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으나 경사가 심한 편이다. 중간 중간 가정집도 있고 카페나 음식점도 몇 개 나온다.

 

●흥국사에는 거의 모든 당우에 용머리와 잡상 석조물이 지붕에 얹혀져 있다. 잡상 석조물은 사찰보다는 임금이 사는 궁궐이나 왕실의 묘역에 있는 걸로 봐서는 흥국사가 조선시대 왕실사찰로서의 역할을 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하나의 특징은 확실치는 않지만 풍경을 찾아볼 수 없었다. 풍경은 일반적인 사찰 당우에 대부분 걸려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풍경이 있었던 당우는 못 본 듯하다. 이 또한 왕실사찰과 연관된 것인지?

▲진입로에 세워져있는 흥국사 안내입판. 덕능마을 표지석도 같이 있다.

▲일주문. 단촐하다. 단청없이 목재로 지어졌고, 다른 일주문과 달리 산 이름없이 사찰이름만 적혀있다.

▲일주문을 지난 200미터 가량 오르면 주차장이 나온다. 수십대는 주차가 가능하다.

▲일주문 현액이다.

▲연혁 안내판

▲일주문을 지나 사찰을 가기전 부도나 비를 모아놓은 곳이 있다. 흥국사기적비. 흥국사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누구의 부도인지는 알 수 없다. 흥국사의 옛 승려중 한명일텐데...어떤 표식물도 없고 부도에 새겨진 글자도 없는것 같다.


▲전 주지였던 월영당 대선사 공덕비

▲사찰 내부 부도 앞에서 본 일주문

▲청신녀 신씨 대혜월공덕비. 청신녀는 요즘으로 치면 그냥 여자 불교신자이다.

▲전 주지였던 한월선사 공적비

▲범종각.경내로 들어서 우측으로 오르면 큰 공터 한 켠에 있다. 공터는 사찰 관계자들의 주차장인 듯 하다.

▲범종: 수락산 흥국사 이라고 적혀있다.

▲또하나의 범종. 나무아미타불 이라고 적혀있다.

▲범종각 안의 목어

▲범종각 안의 법고

▲범종각 안의 운판

▲범종각 현액

▲나한전 전경: 내부에 불상과 나한상이 보물로지정되어 당우 문이 모두 잠겨있어 구경하지 못했다.

▲나한전 내 소조 석가여래 삼존좌상. 16 나한상 일괄 안내문(보물)

▲나한전 현액

▲대방의 우측면

▲대방 정면: 현액은 흥선대원군이 썼다고 한다.

▲대방 좌측면

▲대방 좌측 대문에는 사천대왕이 그려져있다. 대문이 또한 홍살문으로 만들어져 있어 왕실사찰로서 왕릉을 지키기 위한 역할이 반영된 듯 하다.

▲대방 안내문: 현액(사진 아래)을 쓴 사람이 흥선대원군이라 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대방은 다용도실 처럼 사용된 큰 방이다. 저 문은 광으로 들어가는 문 같다.

▲대방 툇마루: 한여름에 툇마루에서 한 숨 자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든다.

▲대방 지붕 기와가 활처럼 휘어져 있다.

▲대방 우측으로 오르는 계단. 돌축을 따라 오르는 길이 있다.

▲범종각 앞에는 석탑이 하나 서있는데 아무 표식이 없다.

▲목조 지장보살삼존상및 시왕상 일괄 무형문화유산 안내문


▲시왕전 앞의 석등

▲시왕전과▼시왕전 현액

▲시왕전 내부의 전경

▲시왕전 지장보살 삼존상과 지장보살도

▲목조시왕상과 뒤에 불화로 제 5염라대왕도 등 시왕도가 있다.

▲사찰 경내에는 고목들이 드문 드문 자라고 있다. 나무 종류다 다양하다.

▲대웅전 단청

▲대웅전 불상

▲대웅전 불화

▲대웅전의 징

▲대웅전 탱화

▲대웅전 문화재자료56호 표시석

▲대웅보전 전경 ▼대웅보전 현액

▲영산전 전경과▼영산전 현액. 이 현액도 흥선대원군 작품이라한다.

▲▲독성전 당우와 ▲현액

독성전 산신도

▲등산로 입구. 계단을 오르면 야외기도처가 있다.

▲바위 곳곳에 불교용품 굿즈가 놓여있다. 애기동자

▲만월보전...약사여래상이 모셔져 있다.▼만월보전 현액

▲약사여래 불상

▲감로각과 현액(아래)

▲감로각 산신도

▲감로각 좌측으로도 부도가 하나있는데, 스님에게 물어봐도 누구의 부도인지 모른다고 한다.

▲곳곳에 놓여있는 불교용품 굿즈들

▲사찰 맨 위에서 내려다 보는 전경

▲석탑.

▲감로공덕비.. 현재는 감로수가 폐쇄되어 있다. 음용불가인가 보다.

▲종무소 인듯한 당우다. 현액에는 응향각(아래) 이라고 적혀있다.

▲공양간 건물. 현액에는 덕혜당 이라고 적혀있다.

▲수락산 등산로입구 큰 바위에 올려진 야외 기도처 불상과 보살들/.

▲성임당탑 안내판.

▲성임당 탑이다. 성임당이란 분과 관련된 어떠한 내용도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탑에 부조로 글자가 적혀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화장실 앞 전봇대에 성임당탑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는 우측 대방 방향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는 좌측으로 올라가면 너른 공터 뒤편 산 입구에 있다.

▲창고로 쓰이는듯한 목조건물이 멋 스러워 보인다.

▲흥국사에는 유난히 석등이 많은 것 같다.

▲흥국사 당우 지붕에 있는 잡상들. 잡상은 궁궐이나 왕실묘에 있는 건물에 올려져있기 때문에, 흥국사가 왕실 사찰이었기 때문에 잡상이 지붕에 있는 것 같다.

▲용마루 용머리 조각

▲납작한 돌을 쌓아올린 담. 멋지다. 뒤로 가보니 창고인지 여튼 건물이 하나 숨어있다.

▲사찰 좌측으로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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