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시설/사찰

한국의 사찰50- 이천 영원사

dogyein 2024. 7. 3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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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찰50- 이천 영원사

【개요】

●영원사는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원적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해법이 638년(선덕여왕 7년)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창건 당시의 이름. 영원암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지만 규모가 어느정도 커진 지금은 영원사로 통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조선시대에는 1577년(선조 10) 사명대사가 중창하였고, 1693년(숙종 19)에는 '동계(東溪)'가 중건하였으나 그 뒤에 폐허가 되었다. 1825년(순조 25) '인암(仁巖)'이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희사를 받아 절을 중창하고, 사찰명은 영원사라 하였으며, 1854년(철종 5) '천통(天通)'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총 3개의 단차를 이용해 대웅전 · 산신각 · 유리광전. 만월당. 요사채 . 범종각. 명부전 등 꽤 많은 당우들이 있으며 규모도 꽤 크고 둘러볼 곳도 많다. 예전에 비해 당우가 많이 늘어난 것같다. 유리광전 석불상은 전면이 크게 파손되었으나 우견편단(右肩偏袒)의 독특한 법의(法衣) 주름 등이 눈길을 끈다.

 

●또, 대웅전 안에 있는 범종은 1769년(영조 45)에 광주 대진사에서 조성한 전형적인 조선 중기 범종이다. 지름 38㎝에 높이 58㎝로 규모가 작으며, 음통이 없고 용뉴(龍紐:鐘頭 부분의 장식)도 고리모양으로 형식화하였으나 조성연대가 분명하여 보존 가치가 있다.

 

●석조여래좌상은 1986년 4월 14일 이천시의 향토유적 제12호로 지정되었다.

본래는 현 영원사 대웅전 우측 약사전 안에 안치했던 것을 1985년 새로 연화대좌를 만들고 현 위치에 안치해 놓았다고 안내판에 적혀있으나, 현재는 다시 유리광전에 모신 듯 하다.

● 창건 당시에 수마노석으로 조성해 봉안하였다고 한다. 사적기의 창건연대에 따르면 영원사는 이천시 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그 뒤 1068년(문종 22) 혜거국사가 중창하였는데, 그때 심은 은행나무는 아직도 살아 있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표현수법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의 불상으로 보기는 어렵고,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 이상으로는 거슬러 올라가지 않은 작품으로 추정된다.

 

●여래좌상은 많이 훼손되어 목 위의 두상(頭像)부분 역시 근래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새로 조성한 머리는 소발(素髮)에 육계가 조화를 이루었으며, 상호(相好)는 원만하고 두 귀는 목 위까지 길게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3도(道)가 있고, 부드러운 어깨는 넓고 당당한 모습이다.

●한편 약사여래좌상에 얽힌 스토리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아래와 같은 전설이다.

 

약사여래좌상 전설

해호선사가 창건 당시에 수마노석으로 만든 약사여래를 조성하여 봉안한 바 있었다. 그런데 후에 절이 모두 타고 약사여래만 남아있었다. 고려 문종22년(1068) 혜거국사가 불타버린 영원암을 중창할 때였다.

혜거스님의 꿈에 약사여래께서 나타나 “왜 나를 버려두고 갔느냐?”고 몹시 호통을 치셨는데 같은 날 신도들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 놀란 혜거스님과 신도들은 다음날 영원사 뒷산인 안산으로 올라가 부처님을 모시고 영원사를 향해 가다가 산 중턱에 이르렀다. 이때 날이 너무 어두워 더 이상 부처님을 짊어지고 갈 수가 없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가 밤을 지내고 아침에 만나기로 했다.

모두가 쉬고 다음 날 아침에 그 자리로 가보니 약사여래부처님은 온데간데없고 흔적만이 남아있어서, 모두가 놀라 사방으로 흩어져 약사여래부처님을 찾았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황망한 일을 당한 혜거스님과 신도들은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영원사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데 영원사로 돌아와 보니 밤새 사라졌던 약사여래부처님이 지금의 자리에 앉아서 혜거스님 일행을 맞이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이 이후부터 약사여래부처님은 영원사를 지키며 모든 아픈 이들이 이곳에 와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몸의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가피를 내리고 계신다.

【특징】

●다른 고지대 사찰에 비해 가는 도로가 그렇게 힘들지 않다. 오르다 보면 몇몇 시설들이 보인다. 기도원인가 교회같은 것도 보이고 그런다.

 

●영원사가 있는 이천시 백사면에는 매년 3~4월마다 산수유꽃이 만발한다. 11월에는 선홍색 산수유 열매가 그 윤기를 발하며 이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가족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사찰이 40여년전에는 매우 작았다고 한다. 어릴때부터 사찰에서 살았던 한 스님이 오랜기간 사찰을 크게 키웠다고 한다. 석조여래좌상. 석불입상 이라는 문화유산도 있고 부지도 넓고, 주변에 산수유축제도 열리고 하니 여러가지로 잘 맞아 규모가 커진 듯하다.

●사찰 규모가 중급규모는 되어서 볼거리도 찍을 거리도 많다. 전체적으로 조경이 매우 잘 됐다. 사찰을 여러군데 다니다 보니, 대체로 경내가 정갈하고 조경이 아기자기하고 잘 된 곳들은 대부분 비구니사찰이다. 여기도 그렇지 않나 싶다. 여성의 섬세함이 경내 곳곳에서 묻어난다.

▲영원사 주차장에서 차를 대고 우측 등산로쪽으로 진입하면 사찰로 들어갈 수 있다.좌측에도 있으나, 등산객들의 통로로 이용되어서 인지 막아놨다. 입구에는 정개산. 원적산 등산로가 안내된다.

▲이곳이 산수유둘레길의 일부인지, 산수유둘레길 안내판도 같이 세워져있다. 주차장 옆엔 화장실이 있는데 시에서 관리하는 화장실인듯 하다. 매우 깨끗해서 놀랬다.

▲사찰 화장실이다. 2021년에 사찰 화장실에서 개방화장실로 전환된 듯하다. 시에서 직접 관리하는지 꽤 시설도 좋고 깨끗하다. 비누면 티슈같은 용품들이 잘 구비되어 기분좋게 사용했다.

▲사찰 진입 직전에 커다란 고목이 있다. 사찰의 역사를 보여주듯 고목들이 몇그루 있다.

▲입구에는 하얀 꽃 나무가 만개해서 반기고 있다.

▲유리광전 전경. 유리광전은 현재 약사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예전에는 그냥 경내에 있었던 것 같다.

▲유리광전 현액이다.

▲유리광전 내부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이다.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산신각 현액이다.

▲산신각 측면

▲산신각의 독성(나반존자) 도이다.

▲산신각 산신도이다.

▲무슨 용도의 건물인지 모르겠다. 사찰 소유인지 아닌지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요사채(만월당)이다. 스님들은 이곳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온다.ㅎ

▲만월당이라는 현액이 걸려있다.

▲만월당 망와다. 대부분 용머리상을 올리는데 이건, 도깨비 상이다.

▲참새한마리가 앉길래 찍어봤다.

▲요사채 앞에는 화초들이 많다.

▲입구에 있는 약사여래좌상 안내판이다. 향토유적 12호이다. 원래는 대웅전 우측 약사전에 있던 것을 1955년 좌대를 마련하여 현재의 위치에 새로 조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유리광전에 모셔져 있어서, 안내판이 실제와 좀 다르다.

▲나름대로 멋스런 고목이다. 많이 기울어 받침대를 받쳐놨다.

▲대웅전이다. 종무소가 있는 맨 아래축에서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나온다.

▲대웅전 현액이다. 편액이라고도 한다.

▲대웅전에 걸린 탱화

▲대웅전 징

▲대웅전 안 법고

▲대웅전 삼존불상

▲경내에 세워진 삼층석탑


▲경내에는 황규선박사 석등시주공덕비가 세워져있다. 아마 석등을 시주하셨나보다.

▲공덕비 옆에는 이런 석조물이 하나 있는데 이게 시주하신 석등인것 같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석등의 모습이 아니다.

▲보호수 지정을 알리는 안내판. 경내에 고목들이 많이 있다.

▲명부전이다.

▲명부전 현액이다.

▲명부전 내부에 있는 주불상. 지장보살이다.

▲명부전 시왕도가 지장보살 좌우측으로 그려져있다.

▲경내에 있는 모자불상이다. 사찰 다니며 모자불상은 처음이다. 따로 이름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풍경이다. 물고기 모양이다.

▲고양이 한마리가 자다가 다가가니 눈만 껌벅거린다.

▲소각장. 보통 명부전이나 지장전 같은 망자를 기리는 당우 옆에 있다. 영가의 물품이나 옷가지를 소각한다.

▲종무소다. 거사님이나 보살님들도 생활하는 듯 하다. 장독을 봐선 내부에 공양간도 있는 듯 하여 규모가 꽤ㅡ큰 단차를 이용한 2층 건물이다.

▲정심당 현액이다.

▲경내의 불상이다. 이 석불상또한 무언가를 안고 있다.

 

▲갑자기 수풀에서 아기고양이가 한마리 나오더니 물을 먹고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아마 새끼를 낳은 어미가 수풀에서 키우나 보다.


▲사찰 곳곳에는 서너그루의 고목들이 자라고 있어서 운치를 더해준다. 가을에 오면 더욱 멋진 사찰일 것이다. 주변에 산수유 축제를 해서 봄에도 멋지겠지만.....

▲대웅전 앞에서 내려다 본 사찰의 전경이다.

▲이 계단을 걸어 올라가서 석축기단을 두개 오르면 대웅전이 나온다.

▲종무소 옆으로 약수라고 적혀있는데 수도로 만들어놨다. 바가지가 있는 것으로 봐서 식수로 쓰나보다. 수도를 트니 날씨 탓인지 처음에 뜨거운 물이 나오다가, 좀 지나니 시원한 물이 나온다.

▲갈산리 석불입상이다. 앞에 사방에 석조물 같은 것이 세워져있고, 앞에 석등 두개가 있다.

▲석불입상 안내판. 원래 주변에 있던 미륵사의 불상이라고한다. 고려중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세 동강으로 파괴된 것을 시멘트로 보강하여 복원했다. 그러나 문화유산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시멘트부분은 다시 제거하고, 다시 보존처리하여 이곳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범종각이다.

▲범종각 내부의 목어다.

 

▲이건 타종하는 목어다. 독특하게 만들어놨다.

▲범종각 현액은 앞뒤로 다 만들어놨다.

▲범종각 내부의 운판이다. 안에 시주자의 이름이 새겨진듯 하다.

▲범종각 내부의 법고이다.

▲범종이다. 대웅전안에도 조선시대 조성된 작은 동종이 있다고 한다.

▲숨은 그림 찾기. 고양이 두마리를 찾아보세요....ㅎㅎㅎㅎ

▲짜잔 찾았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고양이 두마리가 신기한듯 쳐다본다. 나도 니들이 신기하다.

▲노란녀석은 이내 경계를 풀고 엎드리는데, 검은 녀석은 다른데로 도망간다.

▲종무소는 아래 연못쪽에서 보면 2층 구조다.

▲나무의 수형이 구불구불 특이하다.

▲주차장 석축 위에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연꽃이 가득하고 중간에 불상이 하나 서있다.

▲연못 한켠에는 지붕이 있는 평상이 만들어져 있어 한숨 쉬어갈 수 있다.

▲연못 중앙에 조성된 보살입상

▲고목의 자태가 멋스럽다. 등산로입구이자, 사찰 입구에 자라고 있다.

▲사찰입구에 세워진 이 석조물은 앗 '경고문'이란다. 아래부터 붉은 석판에 정숙. 금연. 금주라고 적혀있다. 아마도 봄. 가을에 꽃과 단풍으로 많은 사람이 찾으면서 행락객들이 고기를 먹거나 소란과 음주. 흡연을 하나보다. 이천군수와 영원사 주지의 이름으로 신신당부한다. 옆에 보호수 은행나무의 이야기도 덧 붙여 적어놨다.

▲부러진 향나무 한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꽤 오래됐음직 하다.

▲사찰 아래에도 너댓대의 차량을 대는 주차장이 있다.

▲제약막작. 중선봉행 이라고 적혀있다. 보통 입구에 있는 이런 표지석에는 사찰이름이 적혀있는데.....諸惡莫作 衆善奉行 (제약막작. 중선봉행) 이라함은 "모든 악함을 짓지 말고 여러 선함을 받들어 행하라"라는 의미다.

 

▲사찰 아래 도로에는 백사 산수유둘레길 이라는 이정표가 곳곳에 있다.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왔는데, 커다란 바위에 글자가 적혀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적혀있는데 옴마니반메훔(唵麽抳鉢銘吽) 이라는 글자다. 천수경(千壽慶)에 나오는 짧은 진언으로 이 주문을 계속 외우면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하고,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의해 번뇌와 죄악이 소멸된다고 한다.

▲주차장 앞에 능소화가 멋지게 자라고 있다. 이미 제철이 좀 지났는지 많이 진듯한 모습이다.

▲주차장은 엄청 넓다. 산수유 계절에 행락객을 위한 시설로 시에서 조성해 놓은 것 같다.

▲핸드폰의 와이드 기능을 사용해 사찰의 풍경을 몇 컷 담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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