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시설/사찰

한국의 사찰52- 진천 영수사

dogyein 2024. 7. 3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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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찰52- 진천 영수사

【개요】

 

●진천 영수사는 충북 진천군 초평면 영구리542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5교구 본사인 법주사 말사이다. 영수사는 918년(태조 1년)에 증통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나 확실한 문헌 기록이 없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절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조선 말기인 1871년(고종 8)에 간행된 호서읍지에 처음으로 기록이 나타나는데 간단히 위치만 소개되어 있다. 1937년 간행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영수사는 두타산에 있는데 절 뒤에 영천이 있으므로 절 이름을 영수사라 하였으며 삼한 고찰이라 하였다”라고 적혀 있으며, 상산지에도 이와 같은 기록이 보인다.

●영수사에서 전해 오는 중수기에 의하면 1624년(인조 2) 벽암대사가 중건하였고, 1831년(순조 30) 승려 묘익이 지방민과 힘을 모아 절을 중수하였다 하며, 1866년(고종 3) 이한이 다시 수축(修築)하였다 한다.

●1947년 응택이 중건하였고, 1983년에는 관음보전을 삼성각으로 고쳐 지금의 위치로 옮겼으며, 새로운 관음보전을 시멘트 건물로 지었는데, 이 건물은 현재 요사로 사용된다. 1987년에는 대웅전을 완공하였고, 1992년에는 일주문을 지었다.

●이후 수차례의 중건을 거치면서 근근이 유지되어 오던 조그마한 암자였으나, 30여 년 전 혜철화상의 중창에 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수사 괘불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4호였다가 2008년 보물 1551호로 지정된 탱화이며 국내에서 가장 큰 괘불이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이 모시에 채색으로 그려져 있다.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괘불로서 본래 진천읍 상계리 백련암에 있던 것을 암자가 폐허가 되자 영수사로 옮겨와 매년 4월 초파일에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영수암 괘불은 묘법연화경에 의거하여 석가모니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청문중을 중심으로 그린 영산회상도로서, 1653년 명옥(明玉)을 비롯한 4명의 승려화원들이 그렸다.

●석가모니의 대좌 앞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사리불을 비롯하여 좌우에 시립한 많은 권속의 묘사는 조선후기 영산회상도 중에서도 영산회상을 가장 장엄하고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제작시기가 1653년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시기성, 청법자로 사리불이 등장하는 가장 빠른 괘불화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비록 부분적으로 후대에 수리한 흔적이 보이지만 17세기 영산회상도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2024년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서 10월까지 전시를 하고 있다. 궁금하신 분은 내년 초파일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서 보면 될 듯하다.

●관음보전에는 조선 후기의 건물로서 목조관음보살좌상과 괘불·신중탱화·칠성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 중 높이 90㎝의 관음보살좌상은 조선 중기의 작품이다.

●이밖에도 1870년에 조성된 신중탱화와 1904년에 용운암에서 조성한 칠성탱화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영수사는 비지정문화재로 1977년 단국대학 학술조사 연구반에 의해 문화재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절은 진천의 명산의 하나인 두타산의 영기를 받아 만병통치의 약수가 흐르고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며 한여름에는 얼음보다 차가운 물 때문에 더욱 붐비는 곳이었다고 한다.

【특 징】

●진입로는 꽤나 어렵다. 경사가 심한 길은 아니지만, 교차가 힘든 비포장 길이 수백미터 가량 이어진다. 폭우가 쏟아진 우기라 땅도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있어서 더욱 그렇다.

●1분 가량 오르니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에서 차량 교차가 가능할 듯하다. 일주문을 지나 200-300미터 더 오르니 주차장이 나온다. 사람이 꽤 나 오래 안찾았는지 주차장이 잡초로 가득차있다. 두타산 등산객 주차장으로 같이 쓰는 것 같다.

●이 사찰이 유명해 진 것은 영수사괘불도가 보물로 지정되면서 부터이다. 사찰 규모는 당우 서너개가 있는 작은 사찰이지만, 괘불도 매년 초파일에 경내에 걸리면서 찾는 이가 많다. 이 괘불도는 국내에서 가장 큰 괘불이라고 전해진다.

●이 괘불의 주인은 그러나 영수사가 아니다. 인근 백련암 소유인 것을 백련암이 페사위기에 처하면서, 가져 온 것이라고 한다. 영수사에는 이밖에도 다른 탱화 몇점과 불상이 있는데, 조선시대 작품들이다.

●이 사찰은 불상 촬영을 못하게 한다. 실제로 인터넷에는 많은 당우 내부를 찍은 사진이 나돌고 있지만, 사찰에서는 신도나 불자, 방문객의 당우 내부촬영을 허락하지 않는다. 요즘은 모든 사찰이 안팎으로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있으니 무시하고 찍기보다는 사찰 방침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찰이 대중불교를 표방하며, 일반인들을 포용하려고 하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방침이라고 보여진다. 또 많은 방문객에게 특별히 해가 되는 행위가 아니라면, 개방하는 것은 사찰로서도 도움이 많이 되는 일일 것이다. 사람이 찾는 사찰이 되면 좋겠다.

●실제로 많은 사찰은 일부 보물이나 국보 외에는 방문객은 물론 답사가들과, 신도. 불자들에게도 불상 사진을 찍는 것을 허용하며, 일부 사찰은 옛 사진이 화재등으로 소실되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찾기도 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진입로를 오르다 보면 일주문이 나온다. 1990년대 조성했다고 한다.

▲일주문 현액은 두타산영수사 라고 적혀있다.

▲사찰 입구에는 상산8경 안내문이 붙어있다. 영수사도 8경중 하나인듯하다.

▲영수사 전경이다. 당우는 관음보전, 대웅전. 삼성각. 요사채 등 단순하다.

▲사찰 입구이다.수해를 입었는지 군데군데 비닐 포대로 덮어놨다.

▲사찰 입구에 석조물이 있다.

▲입구에 있는 영수사 사적비

▲입구쪽으로는 두타산 등산로가 안내되어 있다.

▲괘불탱화 안내문이다. 보물 1551호다.

▲영수사 괘불탱은 매년 초파일에 전시되지만, 올해는 10월 1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된다.

▲관음보전이다.

▲관음불상

▲관음보전 옆으로 석탑이 하나 서있다.

▲사찰에서 내려다 본 전경이다.

▲대웅전 전경이다.

▲대웅전 현액이다.

▲삼성각 옆으로 괘불탱을 거는 철제 구조물이 세워져있다.

▲삼성각 전경

▲삼성각 현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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