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시설/사찰

한국의 사찰6-서울 진관사

dogyein 2023. 9. 1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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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는 맑고 쾌청했음
                                           중대형 규모의 사찰이라 사진이 많습니다.

 

◆최근  KBS역사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배경이 되는 사찰로 진관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신혈사'로 사찰이름이 나온다. 그당시 사찰 명이다.

【개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사찰로 대표적인 비구니 사찰이며, 고려 제8대 현종이 1011년(顯宗 2년)에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했다.

●진관대사는 현종을 지켜주어 임금에 이를수 있도록 한 인물로, 현종이 추후 임금이 된 두 그를 기리기위해 지은 절이다. 그러나 '신라시대 고찰'이란 설과 조선 후기 승려 성능(聖能)이 찬술한 북한지(北漢志)에서는 원효대사가 진관대사와 더불어 삼천사와 함께 세웠다는 설도 전해진다.

●진관대사는 현종을 지켜주어 임금에 이를수 있도록 한 인물로, 현종이 추후 임금이 된 뒤 그를 기리기위해 지은 절이라는게 대체적인 창건이야기로 전해진다.

●역사는 오래된 절이지만, 6.25때 대부분 불타서 대부분의 당우는 근현대에 지은 것이며, 불교 유물로 보물이나 국보급은 없다.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서울 근교의 4대 명찰(名刹)로 손꼽힌 이름난 사찰(건립 기록이 없어 설만 있으며, 고려또는 신라시대로 추정) 이다.

【진관사 창건기】

 

● 연기설화(緣起說話)에 의하면 고려 제5대 경종(975~)이 981년(현종 6년)에 죽자, 경종의 왕 아들인 '송'이 왕위를 물려받아 목종이 되면서, 경종 왕비인 현애왕후가 천추태후가 되면서 수렴청점했다고 한다.

 

● 그러나 천추태후는 김치양(金致陽)이라는 자와 정분이 나서 몰래 사생아를 낳게 되었고, 그 아이를 왕에 앉히려고 계획하게된다.

 

●한편 목종은 아들이 없어, 왕위를 이을 후손이 없자 천추태후(현애왕후)의 동생인 헌정왕후와 태조 아들인 "욱' 사이에서 난 대량원군 "순"을 왕위 계승자로 정했다.

 

●그러자 천추태후(현애왕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사생아를 왕위에 앉히려고 계획한다. 천추태후는 자신의 아들인 목종에게 부탁하여 왕위 계승자인 대량원군을 숭경사에 가두게하고 죽이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자 다시 진관대사가 수도하는 삼각산의 한 암자로 다시 보내버린다.

 

●진관대사는 천추태후의 이러한 음모를 눈치채고, 산문 밖에 망보는 사람을 배치하는가 하면,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땅굴을 파서 12세인 대량원군을 피신시켜 자객으로부터 화를 면하게 하였다.

●3년 뒤인 1009년 강조가 군사를 일으켜 목종을 폐위하고, 왕 순(대량원군)을 왕위에 옹립하여 결국 대량원군이 제8대 현종으로 왕위를 계승하게된다.

 

● 대량원군(현종)은 궁궐로 들어가기 전 진관대사와 눈물로 작별하면서 자신이 거처하던 땅굴을 신혈(神穴)이라 명하고 절 이름을 신혈사(神穴寺)로 바꾸게된다.

●왕위에 오른 현종은 진관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인근의 평탄한 터에 진관대사의 이름을 따서 절을 짓고 진관사(津寬寺)라 명하였으며, 그 후 마을 이름도 진관동(서울 진관외동. 진관내동)이라 불렀다.

●1011년 1년여간의 창건 기간동안 당시 대웅전이 사방 10칸, 동,서 승당이 각 30칸, 청풍당(淸風堂)과 명월요(明月寮)가 각 10칸, 제운루, 정재소, 일주문, 해탈문, 종각, 창고 등 상당한 규모로 건립되었으며, 불상과 장엄구, 일상도구 등 사찰에 필요한 일체의 모든 것을 현종이 지원했다.

●완공 그 해 10월에 낙경법회(落慶法會)를 연 후 진관대사를 국사로 책봉. 진관사는 이후 왕들의 각별한 대우를 받게 된다.

 

●1090년(선종 7년) 10월에 고려 선종(宣宗)은 진관사에 행차하여 오백나한재(五百羅漢齋)를 성대하게 봉행하였으며, 이후, 숙종. 예종등이 방문하여 참배하였으며, 이후에도 많은 왕들이 왕래하게된다.

※조선시대에 수륙재(水陸齋)의 근본도량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됨 권근(權近)이 지은 수륙사조성기(水陸社造成記)에 상세기록.

●수륙재에 대하여..●

 

1.1397년(태조 6) 조선 태조는 내신 '이득분(李得芬)'과 '조선(祖禪)스님'에게 조상의 명복을 빌고 나라일로 죽어 제사조차 받지 못하는 굶주린 영혼을 위해 수륙사(水陸社)를 설치할 것을 명함.

-이에 이득분과 상충달(尙忠達), 지상(志祥)스님은 북한산과 도봉산을 답사한 결과 수륙재를 열기에 가장 적합 곳으로 진관사를 선정(낙성식에 직접 태조 도 참석).

 

2.수륙사 건립은 조선을 건국하면서 전쟁에서 죽어간 고려왕실의 영혼을 기리는 목적이며,내적으로는 불안정한 국민정서의 동요를 막고 조선왕실의 안정을 꾀할 목적.

 

3. 수륙재를 위해 조영된 시설물은 모두 59칸으로, 상,중,하단의 삼단을 기본구조로, 중,하단에 행랑이 연이어 들어서 있는 왕실사찰로서의 위엄과 규모를 갖춤.

※이후 불교를 배척하던 태종도 1413년(태종 13)에 진관사에서 성녕대군(誠寧大君)을 위한 수륙재를 열고, 향과 제교서(祭敎書)를 내렸으며, 수륙재위전(水陸齋位田) 100결을 하사하여, 재를 계속하게 하였음.

☆진관사에서는 매년 1.2월 수륙재가 열려 조선왕실의 수륙도량과 국찰로 인정받고 자리매김.

 

●세종 1421년(세종 3년)에 태종 내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재를 올린 이후부터 왕실의 각종 재를 봉행하는 사찰로 국가에서 정례화하였음

 

●1442년(세종24년)에 진관사에 집현전 학사들을 위한 독서당을 세우고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등과 같은 선비들을 이곳에서 학업에 몰두케 하였음.

 

●1452년(문종 2) 대대적인 중창 불사가 이루어지는데, 1463년(세조 9)의 화재로 일부가람이 소실되어 피해. 이후 1470년(성종 1)에 벽운스님이 중건, 1854년(철종 5)과 1858년에 중수, 1879년(고종 16)에 당두화상인 '경운대선사'가 큰방 34칸을 지어 국찰로서의 대가람을 형성.

 

●1908년에 '송암선사'가 경내 오층석탑 조성, 1910년 '경운선사'가 대대적인 중창.(대웅전 삼존상을 개금하고, 명부전의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시왕탱화 등 개금ㆍ보수. 독성전과 칠성각 신축및 자신이 소유했던 토지를 무상 기증해 진관사 중창주로서 족적 남김.

 

●1950년 한국전쟁 때 나한전 등 3동만을 남기고 모두 소실.1963년 비구니인 최진관 스님이 발원, 건물을 차례로 재건하여 오늘에 이름.

●1966년 대웅전.삼존불, 67년 후불탱. 신중탱, 1968년에 명부전, 1969년에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조성, 1970년에는 일주문과 동별당 신축, 1972년에 나가원 신축, 1974년에 범종 조성, 1975년 동정각 신축

 

【문화재】

●현재 진관사에는 6.25때 화재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어 남아있는 3개동에 서울시문화재만 남아있고, 고려시대부터 임금들이 관여된 사찰 이었음에도 국보나 보물은 없는 상황임.(단. 독립운동때 쓰인 진관사 태극기가 보물 2142호로 지정되어 있음)

 

●조선시대 만들어진 나한전 석가여래좌상. 좌협시 미륵보살상, 우협시 제화갈라보살상(서울시문화재 143-1.2.3호). 나한전 십육나한상 16점(서울시문화재 144-1~16호) 나한전 재석상.사자. 인왕상등이(144-17~20호) 나한전 석가모니후불도(145) 독성전(서울시문화재 자료 34호). 독성상(서울시문화재 자료 11호).독성도(유형문화재 12호).산신도(서울시유형문화제 149호) 칠성각 (서울시문화재자료33호) 석불좌상(서울시문화재자료 10호), 칠성도 서울시유형문화재 147호) 칠성각영정(148호)

 

【특징】

-은평구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에 위치함, 하나고등학교 앞 3거리에서 진입(입구 우측에 은평 한옥마을이 있음)

-한옥마을 100-200미터가량 지나서 일주문 나오는데, 일주문 옆으로 주차장이 있으며 약 50여대 가량 주차가능하나 평일에도 거의 만차임(사찰의 유명도나 찾는 사람에 비해 주차장이 너무 부족함)

-사찰 내에도 일부 주차장이 있으나, 관계 차량이나 스님 차량 등만 가능한 듯(경내 템플스테이하는 곳에 카트가 몇 대 있으나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 가능 한 듯)

-사찰을 끼고 북한산 계곡이 있으나 게곡 출입금지

-비구니 사찰이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조경이 잘 되어 있으며,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써 아기자기함. 화장실은 내가 본 역대 화장실 중 상위권(신발신고 못들어 감)ㅋ

▲사찰 안내 도

▲일주문 전에 이런 길이 있다.

▲일주문

▲사찰 경내로 가는 길 경사가 가파르다

▲사찰 입구 계곡 건너에 있는 5층 탑. 아무런 설명이없다

▲대웅전이 있는 경내 전경

▲범종각 쪽서 바라본 경내

▲요사채 사이로 난 계단길이 멋지다

▲경내로 진입하는 길목에 여러개의 부도와 공덕탑이 세워져 있다.

▲사찰 음식으로 유명한 곳이라 역시 장독이 많다

▲나가원(요사채. 대중방): 건물이 크다. 두가지 용도로 쓰인다.

 

▲나가원

▲나가원 정면

▲정원수

▲독성전 산신도

▲나한전 삼존불(좌로부터 미륵보살상.석가여래좌상.제화갈라보살상)

▲나한전 삼존불 안내도

나한전 영산회상도와 십육나한도 안내문

▲나한전 정면. 측면. 후면

▲계곡 쪽의 보호수 2그루(250년)

▲뒷 뜰에도 5층 석탑이 하나 서있다.

▲템플스테이를 하는 계곡 건너 쪽으로 대형 김칫광이 있다.

▲다각과 다각위 장독(다각은 차를 달여 내는 곳)

▲연지원 입구: 연지원은 다과를 파는 곳

▲대웅전과 명부전. 독성전

▲대웅전과 대웅전 앞 석등

▲대웅전 현액

▲경내로 들어가는 길은 차도 옆으로 이렇게 별도 도보길이있다.

▲나한전 16나한상(좌로부터 바다라.소빈다.가나가바차)과 후불도

▲16나한상(좌로부터 빈도라바라다바자.가나가바라타자.나쿠라)

▲독성전

▲독성도

▲독성각 내부 산신도 안내도

▲요사채(보현. 연지.문수. 선유원) 사이로 난 돌계단

▲요사채 창틀의 화분들

▲경내에 놓여있는 맷돌. 어처구니가 없다.

▲바위로 만든 수경시설

▲동정각(현액은 탄허스님)

▲룸비니동산

▲사찰 진입로에 놓여진 안내판

▲명부전 전경

▲칠성각 명호스님 영정(인사절명호불영뎡)

▲명호스님 초상 안내도

▲녹슨 문고리(나가원)

▲문수원(요사채) 요사채는 수님이 기거하는 곳이다.

▲백초월길 안내판...하나고 앞 삼거리부터 진관사까지에 붙여진 길 이름이다. 이 길은 3.1 운동을 적극적으로 뛰어든 백초월 스님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스님이 일제에 쫒겨 지니고 있던 태극기를 독성당 아래 감췄는데 훗날 이것이 발견되어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진관사 범종

▲보문원(종무소)

▲도로에서 본 요사채 보현원

▲보현원 내부

▲북한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

▲당우의 기와

▲극락교에서 바라본 해탈문

▲경내 진입 전 좌측으로 한글길이라고 표지석이 있다. 조선시대 학자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되어 유명한 학자들이 이곳에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나한전 뒤쪽으로 정원과 석불이 놓여있다.

▲요사채( 선유원)

▲세심교에서 바라다 본 보문원(종무소)

▲세심교(

▲사찰 옆으로 흐르는 북한산 계곡

▲소각장

▲입구에 있는 소원성취 등

▲수륙재 관련 안내 문

▲시기가 늦어 연꽃이 끝 물이다.

▲음식연구소(연지원) :여기서 음식을 만드는 체험을 한다고 함.

▲연지원의 다양한 모습들

▲곳곳에 앙증맞은 화분들이 많이 있다.

▲나가원의 나무 대문

▲육영수 여사가 방문시 심었다는 보리수나무

▲적묵당

▲경내 진입전 좌측으로 루비니동산 경계선에 아미타불이 있다.

▲문화재 안내판은 한 곳에 모아 놨다,.

▲계곡에서 바라본 사찰 입구

▲사찰 측면으로 계곡이 흐르나 국립공원 구역이라 피서를 못하게 한다.

▲칠성각과 칠성각에서 발견된 백초월 스님의 3.1 운동과 태극기 관련 안내판. 태극기는 일경에 체포되기 직전 칠성각 아래 급하게 감춰뒀으나, 향후 칠성각을 수리할 때 발견되어 알려지게 됐다. 이에따라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 기록이 남겨져, 훗날 건국포장. 건국훈장.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지정되었다. 초월 스님은 감옥에서 1944년 순국했다,

▲칠성각 칠성도 .석불좌상 안내도와 석불좌상과 칠성도

▲템플스테이 장소(함월당)

▲극락교에서 바라본 해탈문

▲북한산의 한 봉우리인 향로봉까지 2.8 키로미터다.

▲향적당 산사음식체험관이다

▲진관사의 또 다른 입구이다( 홍제루)

▲경내에서 본 홍제루

▲홍제루에서 본 대웅전

▲홍제루 앞의 계곡 바위가 이끼가 잔뜩껴 신비롭다.

▲홍제루 대문의 사천대왕 그림

▲진관사 화장실은 내가 본 화장실 중 제일 깨끗하다. 신발신고 못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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