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찰44- 충주 청룡사
【개요】
●청룡사는 충북 충주시 소태면 청계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며, 입구쪽에 있는 청룡사지와는 무관한 사찰(안내인 설명)이라고 한다. 청룡사를 오르는 갈림길 바로 옆에 있는 청룡사지의 맥을 잇는 사찰이 아니라는 의미다.
●청룡사지에 있는 청룡사는 말 그대로 그 곳에 있던 절이다. 보각국사탑비가 있는 곳이 바로 옛날의 청룡사다. 그 청룡사는 지금 없어지고, 터와 보각국사탑. 탑비. 시전탑. 승탑만 남아있다.
●현재 청룡사지 뒤편 산에 자리 잡고 있는 청룡사는 청룡사지의 청룡사와 무관한 사찰로, 보기 드물게 대한불교 법화종(아래 박스참조) 소속사찰이다. 아래쪽 청룡사지의 옛 청룡사 만큼이나 오래 전에 지어진 절인 듯하다
대한불교 법화종(大韓佛敎法華宗)은 1946년 4월 서울 성북구 성북동 소재
무량사(無量寺)에서 김갑열(金甲烈) 스님이 창종하였으며
법화사상계(法華思想系)에 속한 한국불교의 한 종파이다.
석가여래를 본존불로, 대각국사를 종조로, 《묘법연화경》을 소의 경전으로 삼는다
●인터넷에는 청룡사 관련 이런 이야기가 돈다. 1392년(태조 1) 보각국사(普覺國師) 혼수(混修)가 이곳에 은거하다가 입적하자, 그의 죽음을 애도한 태조는 그곳에 대사찰을 중창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 굴지의 명찰로 내려오다가 조선 말기에 판서 민대룡(閔大龍)이 소실의 묘를 쓰려고 승려에게 많은 돈을 주고 불사르게 하였는데, 그 승려는 절을 불사르고 도망치다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
●이건 아래 청룡사지의 청룡사 관련 이야기 같은데, 현존 청룡사 이야기처럼 만들어져 여기저기 많이 기록이 되어있다. 보각국사에 얽힌 청룡사는 이미 전소된 사찰 스토리 인 듯 하다
●지금 기록하는 청룡사는 옛 청룡사지의 북쪽에 있는데, 원래 암자가 있던 곳으로 1665년(현종 6)에 중수하였고, 1921년에 혜종(惠宗)이 옛 당우를 뜯고 중건하였으며, 1959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1996년에는 현우가 요사를, 1998년에는 법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약사전과 삼성각· 요사채 정도만 남아있다. 부지가 좁은 탓인지 사찰입구 쪽 산으로 미륵불입상과 삼성각이 있다. 삼성각에 모시는 칠성.독성.산신은 자연산 바위에 부조로 새겨져 있어서 영험하면서도, 스산한 기운이 들기도한다.
【특징】
●청룡사지와 갈라지는 갈래 길부터는 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이다. 차량이 교차하지 못한다. 오르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나마 사찰에서 내려오는 차량이 멀리서 어느 정도 보이므로, 차량이 내려오거나 올라오면 기다려줬다 가는 게 현명하다.
●거의 다 올라가서는 화살표처럼 도로가 꺽여 사찰에 진입하기 때문에, 초보 운전자는 가급적 (50미터 즘 아래 우체통 쪽에 차량을 댈 수 있는 공간이 있으므로) 아래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가는게 좋을 듯하다. 초보자들은 한번에 핸들을 틀기 어려운 각도이기 때문이다.
●청룡사지 안내인의 말로는 청룡사지의 청룡사와 지금 소개하는 청룡사는 무관한 절이라고 한다. 이름이 같은 탓에 많은 사람들은 청룡사지의 청룡사와 현존하는 청룡사가 같은 것으로 알고, 뒤섞어서 인터넷등에 기록을 남기는 바람에, 많은 혼란이 존재한다. 자료를 좀 더 찾아보아야 겠다.
●사찰에 진입하면 별다른 표지석이나 일주문은 없이 바로 주차장이다. 차량 10대 가량까지 댈 수 있을 듯 하다. 경내를 보면 2층 콘크리트 건물의 약사전과 옆에 요사 채 밖에 안보인다. 입구쪽으로 석탑과 감로수(샘물). 범종각이 작게 있을 뿐 당우는 약사전 하나만 보인다.
●이정표도 없는 입구 쪽 산으로 오르는 길을 오르면, 미륵불입상이 세워져있고, 거기서 좀 더 오르면 삼성각이 세워져있다. 그게 이 사찰의 당우의 전부다.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르며, 수맥이 많은 산인지, 길이 이끼로 뒤덮여 있고 곳곳에 물이 흐른다.
●충주 쪽이 한강이 흘러서 인지 대체로 수맥이 많은 지역인 듯하다. 따라서 응지에 가면 다소 축축하고 스산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삼성각 내부도 마찬가지다. 어르신은 길이 험해 방문이 어려운 듯 하다.

▲가파른 산길로 진입하는 갈래길에 이런 이정표가 보인다. 직진해서 20-30미터만 가면 청룡사지 국보가 있는 곳이고, 90도로 꺾으면 청룡사로 향한다.
▲산길을 100-200미터가량 오르면 나무아미타불 석조물이 보이고, 차 한대 댈 수 있는 포장도로 막힘길이 있다. 그곳에 이런 계곡이 흐르므로 운전 초보자는 여기에 차를 대고 걸어올라가길 권한다.

♣이 사진의 뒤쪽으로 막다른 포장길이 차 한대 정도 댈수 있을정도의 공간으로 있다. ' 나무아미타여래불' 이라고 적힌 연꽃모양의 석조물이 서있다.

▲이곳에는 우체부도 여기까지 오라는 듯 우체통이 있다. 여기서부터사찰까지는 100-150미터 즘 되는 듯 하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거의 도착즘에는 화살표 모양처럼 구비가 있기에 한번에 핸들을 못틀면 낭패본다.

▲사찰 경내에 다다르면 우측으로 석탑이 하나 세워져있다.

▲사찰 입구 왼쪽으로는 범종각이 개방형으로 정자처럼 세워져있고 중간급 크기의 동종이 설치되어 있다.

▲범종각 위쪽으로는 오래된 고목이 버티고 서있으며, 이 사찰의 역사가 결코 짧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듯 하다.

▲사찰 주차장서 고개를 돌리면 이런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호연지기를 키울 장소로 적격이다. ㅎㅎ

▲주차장 있는 곳이 경내이지만 당우는 요사채말고 약사전 하나이다. 1층은 뭘하는 곳인지 모르겠고 약사전은 2층에 있다. 당우가 하나뿐이어서 인지 불상에 꽤 많다.

▲약사전 현액이다. 약사전은 보통 질병을 치료한다는 약사여래를 모시는 곳이다. 사찰에따라서는 드물게 유리광전이라고도 한다.

▲사찰의 입구에 석조물이 하나 서있으며, '입차문래. 막존지해. 무해공기.대도성만' 이라고 적혀있다. 해석하면 "이 문을 들어서는 자는 반드시 세속의 지식을 벗어던져라. 알음이 없는 빈 그릇이라야만 큰 깨닭음을 이루리라"다. 속세에서의 모든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고 와야지만 큰 깨닭음을 얻을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약사전 옆으로는 요사채가 있다. 백구 한마리가 묶여있다. 산사를 찾으면 늘 저런 대형견들이 보살견으로 자라고 있다. 거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버린 것이다. 큰 개들도 어릴때는 매우 이쁘기 때문에 사지만, 수개월만 지나면 금방커져 감당이 안되니 버린다. 이곳의 백구는?

▲약사전 안에도 아래서 본 같은 연꽃 모양 석조물이 있다, 나무아미타불 여래불. 나무다보여래불 이라고 적혀있다,


▲약사전 안의 탱화들이다.

▲약사전이다.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졌다.


▲약사전 내부에는 약사여래불을 비롯해 다양한 불상들이 좌대에 놓여있다. 대웅전을 비롯해 여러 당우의 역할을 같이 하는 건가?

▲약사전 내부의 동종과 법고

▲주불상 뒤편으로 작은 불상들이 수십개 놓여있다.

▲산으로 오르다 보면 나오는 고목 한 그루


▲이끼 낀 큰 바위위에 돌탑들이 세워져있다.

▲미륵불상에서 내려다 본 전경이다.

▲바위를 뚫고 나온 나무 뿌리. 단순 대결로는 나무의 강도가 돌의 강도를 이길 수 없지만, 이렇게 뚫고 나올 수 있는건 생명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생물인 나무가 무생물인 바위를 이긴 격이다.

▲주차장 입구왼쪽으로 난 산으로 오르는 계단을 30미터가량 오르면, 미륵불입상이 나온다.

▲미륵전이다. 미륵불입상이 서있다.

▲미륵불 앞에 놓여진 석등

▲미륵전에서 다시 30-40미터 가량 오르면 삼성각이 있다.


▲삼성각은 바위를 보듬고 지어졌다. 앞에 나무 난간의 축대가 있지만 왠지 위태로워보인다.

▲삼성각은 자연석에 새긴 삼신상이 있다. 앞에서 보면 당우지만, 사실상 마애를 지붕으로 덮은 격이다. 수맥이 많은 지형인지라 마애불로 금방이라도 물이 흐를듯하며 축축하고 스산한 느낌마저 든다. 습기 탓인지 당우 문이나 지붕 주변에 나방이나 날파리가 굉장히 많다. 마애불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가 안보인다. 삼성각은 칠성. 산신. 독성을 모시기 때문에 바위에 새겨진 인물은 그들일 것이다.

▲사찰 한 켠 바위아래 약사물이 있다. 사찰에서는 감로수라고 한다. 식용인지 문이 닫혀있고 쪽 바가지가 걸려있다.


▲가건물 형태로 지어진 범종각과 현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