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시설/사찰

한국의 사찰61- 안성 청룡사

dogyein 2024. 10. 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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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찰61- 안성 청룡사

●안성 청룡사는 사찰 규모에 비해 국가문화유산이 많아 꽤나 유명한 사찰이다. 안성 청룡사는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79에 위치한 사찰로 서운산 등산로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조계종 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인 청룡사는 13세기 후반 원나라 승려인 명본국사가 처음 세운 대장암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약 100년이 지나 고려 공민왕 때 보제존자 나옹선사가 크게 다시 지은 다음 청룡사로 부르게 되었다. 공민왕 21년(1372)에 청룡사에서 간행한 능엄경(보물 제698호) 등이 전해져 당시 활발하게 불사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선조 30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절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없어졌다.

 

●대웅전(보물 제824호)도 유명하다. 대웅전은 사찰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웅장하게 버티고 서있는데, 선조 34년(1601)에 다시 지어진 다음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건물 앞쪽 공포에는 활짝 핀 꽃 모양 조각이 있지만 뒤쪽 공포에는 없다.

 

●뒤쪽 공포가 훨씬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고, 앞쪽 공포의 조각은 수리하면서 조각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기둥은 구불구불한 아름드리 나무를 나무껍질만 벗겨 내고 본래의 나무 형태를 그대로 살려 세워,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한국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현재 지붕에 잔존하는 명문기와에는 1601년(선조 34년), 1633년(인조 11년), 1681년(숙종 7년) 등 3번의 번와공사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18세기에는 1720년(숙종 46년)에 사간도인(思侃道人)이 대웅전, 관음전, 문수전 등을 중수하고 그 사실을 기록한 사적비를 조성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서 1821년(순조 21년)에 대웅전 수시를 하였고, 1849년(헌종 15년) 유관선사가 대웅전을 보수하였다. 1863년(철종 14년)에 대웅전 일전만 남아있고 대웅전마저도 서까래만 남아있어 위험한 상태여서, 하월선사가 보수하였다고 [중수공덕기]에 전해진다.

 

●또한 절 근처에서는 조선 말 남사당패가 활동하면서 시주를 많이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절 아래 불당골에서 겨울을 보내며 기예 연습을 하고, 청룡사에서 내준 신표를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연희를 하며 생활했다고한다.

 

●20세기에 들어서 청룡사는 1942년 만하선사가 사찰을 중수하였고, 1985년 1월 8일에는 대웅전이 보물 제824호로 지정되었다.대웅전 안에는 안성 청룡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제1789호)이 모셔져 있고, 사인비구가 만든 동종(보물 제11-4호)도 있다고하나 지금은 없는듯하다.

 

●또 사찰에는 높이 9m, 폭 6.5m에 달하는 청룡사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57호)과 청룡사 감로탱(보물 제1302호)이 있다. 이들은 대웅전과 더불어 17세기를 대표하는 문화재이다. 이 밖에도 금동관음보살좌상과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 석탑 등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입구에는 사찰의 역사를 담은 사적비가 있는데, 조선 숙종 46년(1720)에 세운 것이다. 이 사적비에는 청룡사가 인조의 셋째 아들이며 효종의 동생인 인평대군의 원당이라고 적혀 있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에 청룡사가 왕실의 지원을 받아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가람배치의 원형은 조선중기의 사간도인에 의한 중수시기에 이루어졌다고 보이며, 19세기 사찰의 쇠퇴기에 거의 폐허가 되어 현재의 대웅전만 남아있게 되고, 현재의 전각들은 20세기에 들어와 시행된 중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사찰의 배치는 진입부로부터 왼쪽으로 개천이 흐르고 개천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 높은 계단을 올라서서 대문을 들어서면 작은 마당이 나오고, 마당을 지나 또 낮은 석계를 오르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게 된다.

 

●마당의 중심 제일 윗부분에 대웅전이 위치하여 불사의 중심공간을 의미하고 있다. 청룡사의 배치는 일반적인 산지사찰의 모습과 차이가 있는데, 서양하여 배치한 점과 일주문에서 천왕문, 누각을 거쳐 마당을 중심으로 전각이 사방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배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시대에 걸쳐 수많은 중창과 중수가 이루어 졌고, 사찰이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역사 등을 볼 때, 기존의 규범을 지키기보다는 상황에 맞추어 필요한 건축을 시행했던 결과로 유추할 수 있다.

 

●한편 대표 문화유산 중 하나인 안성 청룡사 지장시왕도는 19세기 후반 서울과 경기지역을 대표하는 화승 한봉 창엽이 중심이 되어, 등삼 등의 화승들과 함께 조성한 수작으로, 1874년에 청룡사 석가여래삼불회도, 아미타여래회도와 함께 조성됐다.

●19세기 후반 왕실이 후원하여 불상이나 불화를 조성하는 경우, 대개 불화를 조성한 해에 불상을 개금을 하는 사례가 많은데, 청룡사 지장시왕도의 조성 역시 불상의 개금과 더불어 조성되었다.

 

●이처럼 문화유산이 즐비한 안성 청룡사는, CCTV나 경보장치가 없던 시절인 1991년 3월 7일에서 8일 사이에 대웅전의 신중도, 현왕도, 칠성도를 도둑맞았다. 절도범은 사찰에 침입해 면도칼로 탱화를 도려내 불화들을 훔쳤다고 하며 아직 찾지 못한 듯하다.

 

●경기 남부지역에 위치한 안성은 넓고 기름진 토지와 삼남(三南)인 충청도·전라도·경상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안성장터를 중심으로 인간과 물자의 교류가 활발한 지역이 갖고 있는 장단점이다. 안성의 대표적 천년고찰만 현존하는 사찰 가운데 청룡사, 칠장사, 석남사 등이 대표적이다.

 

【문화재】

 

●고려시대 청룡사에서는 대장군 김호와 영암군부인 최 씨가 시주하여 1372년에 능엄경(리움 소장, 보물 제698호)을 5권 1책으로 묶어 간행했다. 또 공양왕의 어진을 봉안했다는 사실은 고려 말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최고의 사세를 차지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청룡사는 조선 전기 세조 연간(1455~1468)에 도성의 용흥사와 진관사의 기물을 하사 받을 정도로 지속적인 왕실의 후원이 있었을 것이지만, 구체적인 연혁은 알 수 없다. 사찰은 1601년경에 대웅전을 건립하고, 1603년에 소조석가삼존상을 봉안한 것을 보면 임진왜란 중에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이후 인조의 셋째아들인 인평대군(1622~1658)의 원찰이 되어 왕실의 후원을 받았다.

 

●현존하는 불화기록과 현판 등의 문헌기록을 참조하면, 1658년에 사과(司果) 박난(朴蘭)과 명옥(明玉)이 주상삼전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영상회괘불을 그리고, 1674년에 주종장 사인이 범종을 조성하였으며, 1692년에 조상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감로도를 제작하였다.

●1720년에 사간(思侃)이 사찰을 중수한 후에 사적비를 세웠고, 1745년에 법당을, 1821년에 대법당과 명부전을, 1825년 대웅전을 보수하였다.

 

●1863년에 대웅전 불상을 개금하고, 1874년에 아미타회상도와 지장시왕도 등을 조성하였으며, 1878년에 불상 개금과 삼세불도를 제작하였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청룡사에서는 상당히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청룡사에 소장되었던 문화재는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조선총독부 관보본이 남아있다.

●20세기 전반에 작성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에는, 본사에 소장된 성보물이 29건 22점으로, 전각별로 불상과 불화가 정리되어 있고, 뒤쪽에 암자인 내원암, 서원암, 안성봉덕포교소 등의 재산대장이 정리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발생해 다시 조사해서 기록해야 할 듯하다.

 

●그 가운데 봉덕포교당은 시내 비봉산에 위치하고, 1920년대 청룡사 주지 이응섭 스님이 읍내에 사찰이 없어 중생을 제도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시내 사람들의 후원을 받아 포교소 건립을 1922년 7월부터 시작하였다. 따라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1922년 이후에 작성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불교문화재 도난백서 증보판에 따르면 현재 문화재청 사범단속반과 조계종 총무원에 신고된 청룡사에서 도난당한 성보문화재는 신중도, 칠성도, 현왕도(1991.3.7~3.8 도난)이다.

【특 징】

 

●왜 이 사찰에는 유독 중요한 문화유산이 많을까?.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만 해도 동종(제11-4호), 대웅전(제824호), 영산회괘불탱(제1257호), 감로탱(제1302호), 소조석가여래삼존상(제1789호) 등 5건에 달한다. 이는 왕실의 사찰로서 역할을 했느냐 여부다. 왕가에서 원찰로 삼으면 당연히 많은 유산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요즘 안성의 천년 고찰들은 대부분 공사중이어서 어수선하다. 칠장사도 내부에 유적 발굴이 진행중이며, 당우들도 경기도 문화유산돌봄에서 보수작업을 하고 있다.

●석남사 또한 지금 진입로 공사중이어서 굉장히 어수선하다. 이곳 청룡사도 마찬가지로 입구에 석축을 쌓는 등 보수작업을 진행중이어서 안내판과 안내도가 보이지 않았다.

●공사하는 포크레인을 피해 계단을 올라 경내에 진입하자 장엄한 대웅전이 압도한다. 전체적으로 5-6개의 당우들로 구성된 소형축에 드는 사찰이지만, 왕실사찰로서 명성을 이어오면서, 많은 보물. 국보급 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대웅전의 탱화 몇 점은 1991년 도적들에 의해 도난당했지만, 여전히 청룡사에는 몇개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있다.

●그대로 다 공개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사찰의 주요문화 유산 도난이 잦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많이 이전 보관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튼 청룡사는 그 이유로 유명세를 갖고 있는 사찰이다.

●청룡사는 진입로에서 부터 청룡저수지를 끼고 진입하기 때문에 음식점이나 카페도 드문드문 계속 해서 있고, 낚시꾼이나 수상레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저수지 끝 즈음에 저수지 전용 공용주차장이 있으나, 평일에는 사찰 입구 쪽에 7-8대 정도 댈 수 있는 주차장이 있으니 거기까지 와도 된다. 다만 등산객 차량도 꽤 있기 때문에 장담할 수는 없다.

 

▲사찰 입구 주차장쪽에 청룡사 표지석과, 중흥불사공덕인연예찬비/ 시주자비등이 세워져있다.

    ▲주차장에서 바라다 본 사찰 모습

▲사찰 입구가 공사중이라 어수선하다. 진입로를 다시 정비하는 듯 하다.

▲사찰 안내문과 가람 배치도를 공사 자재때문에 볼 수가 없다 ㅠ

▲입구. 사천왕문이다. 밖과 안에서 본 모습▼사천왕문현액(서운산청룡사 라고 적혀있다)

▲사찰입구 좌측으로는 화장실로 통하는 쪽문이 있다.

 

▲지봉당 뒤쪽으로 최근에 지은 가람이 하나 있는데 뭔지 모르겠다. 법당은 아닌듯 하다.


▲지봉당이다. 법당같아 보이지 않는다. 선방이거나 요사채 용도같다. ▼지봉당현액

▲지봉당 뒤쪽으로 소각장이 있다. 소각장은 망자의 유품을 소각한다고 한다.

▲대웅전 전경이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훼손이 많이 되어 최근에 보수공사를 수년에 걸쳐 진행했다고 한다. 단청또한 천연염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대웅전의 기둥은 나무의 휘어짐을 그대로 이용했다.

▲대웅전의 현액이다.

▲대웅전의 안내문이다.

▲대웅전 보물지정 기념비이다. 사찰의 문화유산은 지정이되면 이런 비를 앞에 세운다.

▲대웅전 측면을 보면 몇몇 기와가 글자가 새겨져있다. 보통 저런 글이 있는 경우는 해체 보수작업을 할때 기록을 적어놓은 경우가 많다.

▲대웅전 벽면에는 나무액자가 2-3개 걸려있는데 뭔 글인지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름을 적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대웅전의 풍경이다.

▲대웅전 탱화

▲대웅전 불상과 석가여래삼불회도와 안내문

▲청룡사 동종 안내문. 예전에 명부전안에 있었던 것 같으나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대웅전에 있는 종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동종과 색이 다르다.

▲청룡사 3층석탑

 

▲명부전과 명부전 현액

▲명부전 주불상과 지장시왕도

▲명부전 내부


▲명부전 지장시왕도 안내문

▲산신각과 현액

▲산신각 내부 산신도

▲요사채(청룡전)

▲봉향각 ▼봉향각 현액

▲범종각과 범종각 현액

 

▲범종. 자비범종이라고 적혀있다.

▲법고(꽤나 오래된 것같은 흔적이다)

▲운판

▲서별당이다. 용도가 무엇인가? 보살님들이 있는 곳인가? 뒤편에 냉장시설이 있다.

▲관음전과 관음전 현액

▲관음전 아미타여래회도 안내문

▲관음전 금동관음보살좌상 안내문

▲관음전 금동관음보살좌상과 아미타여래회도

▲관음전 뒤편으로 장독대가 보인다.

▲서별당 옆으로 나무 꽃이 피어있다.

▲종무소 앞의 감로수

▲화장실. 사찰 밖 입구쪽에 있다. 사찰 내에서도 쪽문으로 연결된다. 현재 9월말 현재 공사중이라 입구가 어수선하다.

▲청룡사 앞에는 계곡물이 흘러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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