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시설/사찰

한국의 사찰21-파주 용암사

dogyein 2023. 11. 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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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찰21-파주 용암사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혜음로 742-28

【개요】

●전국에 용암사라는 이름의 절은 많이 있다.

오늘 소개할 곳은 그중 파주 용암사(龍岩寺)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長芝山)에 위치한다. 고양시 벽제관에서 광탄으로 향하다 혜음령 고개를 넘으면 나온다.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용암사는 자그마한 사찰이지만, 국가 보물 제93호인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이 있어서 유명세를 띠고 있는 사찰이다. 또한 박정희. 이승만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도, 많은 불자가 찾는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사찰은 마애불상의 기록에 의해 창건연대가 대충 알려졌지만, 정확히는 언제부터 이곳에 가람이 형성되었는지 알 수 없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제13대 선종(宣宗, 1083~1094)때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을 조성한 배경과, 절의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하고 있어, 약 900여년 전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이 만들어진 11세기를 창건연대로 잡고 있다.

 

●이후 사찰은 터만 유지해 와서 조선시대는 그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근대에 들어 1936년대 파주에 사는 박금용(朴今用)을 비롯하여 면내 신도 심상각(沈相恪), 조수천(曺守天), 이종구(李鍾九), 이동훈(李東薰) 등 유지들의 주선으로 절이 재창건 되었다. 이때 사찰에는 백정(白淨) 만월(滿月)과 승려 혜성(慧城)이 중창 불사를 시작하였다.

●따라서 사찰 당우들은 역사만큼 오래지 않고, 1935년 4월 대웅전 3칸을 재건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장단군에 있던 장선환대사가 주지로 부임하여 절을 수호하였는데, 이 때 현재의 사명인 용암사 (龍庵寺)로 명칭을 바꾸고 봉선사 말사에 등록하였다.

 

●이후 1978년 대웅전 불사에 착공하여 1979년 완성하였다. 이듬해에 대웅전 안에 지장탱화와 감로탱화를 조성하고, 요사채는 1982년 이후 꾸준히 증·개축하였으며, 1984년에 종각을 지어 범종을 봉안하였다.

● 대웅보전 앞뜰에 있는 범종은 봉덕사종을 본 따서 제작한 범종(높이 187cm, 鐘口115cm)을 안치한 범종각이 위치해 있다.

 

●1950년대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어머니가 이곳을 찾고, 1953년에 이승만 대통령 내외가 이곳을 다녀간 적이 있어 현재의 절 입구가 확장되었다고 한다. 7층탑과 동자승 석상에 관련 안내문이 있다.

 

●당우는 현재 서너개에 불과하며, 경내의 중앙으로 대웅보전이 비교적 넓은 터에 남향을 향해 자리잡고 있다.

● 대웅전 우측으로 용암사 종무소가 위치해 있다. 마애이불입상이 위치한 기슭으로 미륵전이 있고 석불 아래에 삼신각(三神閣)이 자리하고 있다. 미륵전과 삼신각은 한 당우다.

 

●대웅전에는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석가모니 후불 탱화 ·지장 탱화 ·감로탱화·신중탱화가 있다. 미륵전에는 칠성탱화·산신탱화·독성탱화 및 작은 범종이 하나 있다.

 

●사찰 뒤편에 있는 용미리 석불입상(마애이불입상.쌍석불)의 조성 배경과 절의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선종(宣宗:재위 1083~1094)이 후사가 없어 고민하던 중, 하루는 후궁인 원신궁주(元信宮主)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나 말하기를 "우리는 파주 장지산에 산다. 식량이 떨어져 곤란하니 이곳에 있는 두 바위에 불상을 새기라. 그러면 소원을 들어주리라" 하였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그곳에 실제로 큰 바위가 있어 서둘러 불상을 만들게 하였다.

 

●그때 꿈에 보았던 두 도승이 다시 나타나 왼쪽 바위는 미륵불로, 오른쪽 바위는 미륵보살상으로 조성할 것을 지시하며 "모든 중생이 와서 공양하며 기도하면, 아이를 바라는 사람은 득남을 하고 병이 있는 사람은 낫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불상이 완성되고 절을 짓고 나자 원신궁주에게 태기가 있어 한산후 물(漢山侯勿)을 낳았다고 한다.

 

●마애이불입상은 보물로 지정되어있으며, 바위 사이에 세로로 생긴 자연적인 틈을 이용해 두 개의 불상으로 나누어 새겨져 있는데, 전체 높이가 불두까지 합쳐 19.85m에 이르러 실제로 보면 압도한다.

●천연 암벽을 이용해 불신을 만들고 그 위에 목·머리·갓을 따로 만들어 올린 특이한 형태이다. 한때 왼쪽 어깨 위쪽에 대통령 이승만이 세웠다는 동자상과 칠층석탑이 있었는데 1987년 철거하여 요사 뒤편으로 옮겼다.

 

●쌍석불은 웅장한 크기에 비해 신체비율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등 서투른 조각수법으로 그 중요성이 널리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우거진 숲 사이로 보이는 토속적인 얼굴과 자연스러운 미소로 방문객을 마을 어귀에서부터 맞이하는 모습이 정겹다.

●한편 용암사는 1997년 큰 화재가 나서 많이 소실되었다. 이후 재건축을 하긴 했으나 재원이 부족하여 사찰을 재건하는데 몇차례 중단되었다고 한다.

 

【특징】

 

●네비따라 가다보면, 사찰이름을 크게 적은 이정표와 파킹(주차장)표시가 된 쪽으로 들어오면 넓은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한쪽으로 사찰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10미터 정도 더 가면 사찰경내로 가는 포장된 오르막이 있어 관계 차량이나 사찰 차량은 진입할 수 있다.

 

●몇몇 방문객이 일주문 근처 공간 곳곳에 주차를 하고 있으나, 입구가 매우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평일에 주차장이 공간이 많을 땐 사찰이 계단만 오르면 되니, 노약자가 아니라면 가급적 주차장에 차를 대면 좋을 듯하다.

 

●인근에 파주삼릉. 윤관 장군의 묘가 있으니 시간이 되면 한번 들러봄직하다.

 

▲용암사에 대한 안내문. 고려시대 사찰로 추정되나, 1900년대까지 기록은 없다.

▲용암사 주차장

▲사찰로 직접 진입하는 오르막길 이정표

▲사찰 입구 우측 20미터 옆에 있는 주차장 표지석

▲주차장에서 사찰로 오르는 계단

▲계단을 오르면 곧장 일주문이 나온다.

▲사찰 관계차량이나 노약자인 신도들은 이 오르막으로 올라오면 사찰 바로앞의 공간에 몇대 주차를 할 수 있다,

▲삼신각 근처에 터주대감인듯한 고양이 한마리가 있다. 애교가 장난이 아니다. 다가와서 다리와 신발에 누워 부비부비를 엄청 한다.

▲삼신각 내부의 탱화들

▲대웅전 용마루 모양

▲미륵불상으로 오르는 길 입구에 약수와 불상이 하나 있는데 안내석이 세워져있다.

▲약사 여래불과 약수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마애이불입상. 남녀 한쌍이라고 하며, 20미터에 가까워 실제보면 압도한다.

▲마애이불입상에서 바라본 전경

▲마애이불입상 관련 안내

▲입상 앞에 달려있는 소원성취 등

▲마애쌍불로 올라가는 계단

▲마애석불입상 관련 안내문

▲경내 장독대

▲대웅전 삼존불상과 탱화

▲대웅보전 현액(사찰마다 대웅전의 명칭이 조금씩 다르다. 대웅전과 대웅보전이 가장 많다) 사찰마다의 개성있는 현액(간판)을 보는 재미도 좋다.

▲대웅전 풍경. 풍경은 대웅전과 종무소에만 달려있다.

▲마애불로 오르는 계단 양옆으로 놓인 불상들

▲미타전과 삼성각의 현액. 한 당우에 같이 있다.

▲삼성각. 미륵전 전경

▲애교떠는 고양이 ㅎ

▲삼성각 옆에 있는 동자승과 칠층석탑관련 안내석. 이승만 대통령과의 연관성이 있어 사찰의 유명세에 한 몫 거든다.

▲7층석탑과 동자승 조각석

▲약수 관련 안내문

▲최근에 지은 듯한 다보탑모양의 석탑. 대웅전 전면 좌측을 차지하고 있다.

▲종무소 건물.

▲대웅전 정면 우측에 있는 7층 석탑

▲대웅보전 전경

▲범종루

▲범종

▲사찰입구 일주문을 지나 경내 앞에 나무사이로 난 공터에 차들이 잔뜩 서있다. 절입구가 이렇게 어수선 해서야...... 평일엔 노약자나 사찰관계자외에는 주차장으로 안내했으면 한다.

▲사적비

▲대웅전 토지불사비

▲일주문 처마밑에 걸린 일주문 시주기념 액자다. 사찰의 간략한 내용과 시주자 명단

▲일주문에 있는 용모양 조각

▲박정희 전 대통령이 들러 기증했다는 석등.사찰입구 좌우로 두 개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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